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은 아니’라는 선택.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는 난자 냉동이라는 새로운 유예 속에서 여성은 생물학적 시간과 사회적 압박, 미래의 가능성을 조율하고 있다. 이름은 토스칸. 올해 서른네 살인 토스칸은 파리의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한다. 현재 난자 9개는 영하 196°C의 저온 상태로 트농(Tenon) 병원 연구실에 보관되어 있다. 3년 전 산부인과 의사는 난자 […]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은 아니’라는 선택.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는 난자 냉동이라는 새로운 유예 속에서 여성은 생물학적 시간과 사회적 압박, 미래의 가능성을 조율하고 있다.

이름은 토스칸. 올해 서른네 살인 토스칸은 파리의 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한다. 현재 난자 9개는 영하 196°C의 저온 상태로 트농(Tenon) 병원 연구실에 보관되어 있다. 3년 전 산부인과 의사는 난자 냉동을 권유했다. 자궁내막증과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앓는 데다 미혼이었고, 당장 아이를 가질 계획도 없었기에 난자를 얼리기로 결심했다. 그 후 토스칸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간을 조금 벌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안도감을 품고 살아왔다. 토스칸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 사회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준다. 2021년 생명윤리법이 개정되면서 29세에서 37세 사이의 프랑스 여성은 의학적 사유가 없어도 전액 건강보험 지원을 받아 난자를 채취 및 냉동 시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신청자는 빠르게 늘었다. 지금까지 총 4만2,300건이 넘는 신청이 접수됐고 1만1,595명의 여성이 최소 한 차례 난자 냉동 시술을 받았다. 문제는 수요를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기준 평균 대기 기간은 11.7개월. 생식능력에서 한 달 한 달이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수만 명의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대기 상태로 보내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프랑스의 인구통계는 더 극적으로 보인다. 2025년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56명으로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해 프랑스 본토에서 태어난 아기는 64만5,000명으로 마지막 정점을 기록한 2010년에 비해 24% 감소했다. 평균 출산 연령은 이제 31.2세에 이른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를 ‘위기’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 역시 2024년 1월 기자회견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한 ‘남성과 여성의 불임 문제’를 언급하며 ‘이러한 재앙을 극복하고 인구 회복을 위한 대대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출산율 감소를 곧바로 재앙으로 규정하는 시선에는 반론도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레베카 저잔(Rebecca Zerzan)은 지나친 우려를 경계한다. “전 세계적인 출산율 감소는 공중 보건과 인권 측면에서 하나의 중요한 진전입니다. 10대 임신이 줄고 있다는 뜻이며, 젊은 여성이 더 나은 선택을 하고 피임에 접근하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유엔인구기금이 진정한 위기로 보는 것은 출산율 감소 자체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많은 여성과 남성이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아이를 갖거나 갖지 않을지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프랑스 국립인구학연구소(INED)의 인구통계학자 자비에 티에리(Xavier Thierry)는 “프랑스의 강력한 가족 정책이 출산율 감소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물가와 주택 가격 상승, 다음 세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출산과 육아를 계획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사례는 이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출산율 감소와 단순히 출산 시기가 늦어지는 현상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이후 출산율이 24% 감소한 미국에서 연구자들은 이를 ‘출산의 지연 이행(Postponement Transition)’이라고 명명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45세 여성의 88%가 자녀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30세까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 상당수가 이후 45세가 되기 전 출산한다는 의미다. 출산을 늦춘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미카엘 그린베르그(Michaël Grynberg) 교수는 클라마르 소재 앙투안 베클레르 병원에서 매일 난자 냉동을 고민하는 여성들을 만난다. 2021년 관련 법안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그 역시 난자 냉동을 둘러싼 지나친 기대에는 선을 긋는다.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임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난자 냉동을 흔히 ‘생명보험’에 비유하는 것부터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생명보험은 나중에 얼마를 돌려받을지 알 수 있지만 난자 냉동은 성공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난자 동결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사립 병원, 특히 관련 시술로 주목받는 스페인의 병원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 사실도 있다.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15~20개의 난자를 확보하려면 평균 두세 차례의 난자 채취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성공 가능성이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들은 한 번만 난자를 채취하면 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여러 차례 반복할 때가 많죠. 그때마다 비용은 물론 신체적 부담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나이 역시 결정적 변수다. 난자 냉동의 적기로 꼽히는 33세에는 충분한 수의 난자를 확보했다는 전제 아래 냉동 난자를 이용한 임신 성공률이 75%에 달한다. 하지만 37세가 되면 그 수치는 15~20%로 떨어진다.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난자 채취가 가능한 시점을 37세 생일 전날까지로 제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린베르그 교수는 이 기준이 다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근거 없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의학이 아직 막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난소의 노화입니다. 시간을 멈출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난자를 채취해 냉동하는 바로 그 순간의 시간일 뿐이죠.”
토스칸은 이런 현실 속에서 난자 냉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진료 의뢰서를 받은 뒤 여러 병원에 문의했고 트농 병원에서 답을 받았다. 처음 연락한 뒤 첫 진료를 받기까지 6개월, 다시 실제 시술에 들어가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모든 절차를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린다. “특히 주사 놓는 법이나 각각의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죠.” 토스칸은 일정을 스스로 조율하기 위해 2주 동안 과배란 유도 호르몬을 직접 주사했다. 그런데 첫 주사부터 큰 실수를 했다. 투여량을 잘못 계산해 4분의 1만 맞아야 할 약물을 한 번에 전부 주입한 것이다. 마침 일요일이었고 집에는 그녀 혼자였다. 놀란 토스칸은 독극물 관리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날 깨달았죠. 정작 필요한 정보를 누구도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요.” 호르몬 치료 자체도 만만치 않았다. 복부팽만감과 유방 통증, 심한 감정 기복이 이어졌고 결국 직장 동료들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설명해야 했다. 난자 채취 당일 아침 7시 병원에 도착했을 때 통증이 10점 만점에 10점에 이를 정도였다. 전날부터 금식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통제까지 끊었기 때문이다. 공복에도 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복도에서 쓰러졌다. “정보를 제대로 알았다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럼에도 시술은 무사히 끝났고 난자 9개를 냉동 보관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어려움을 겪고 난 뒤 토스칸은 언젠가 생명을 품을 수도 있는 자신의 몸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시간을 조금 벌어둔 기분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도 들고요. 적어도 후회는 없겠죠.”
하지만 이런 기회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021년 법 개정으로 난자 냉동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실제로 누구나 제때 시술받을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기 시간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릴, 낭트나 몽펠리에의 일부 대학 병원에서는 길게는 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체 신청자의 절반 이상이 몰리는 일드프랑스는 관련 의료 기관의 포화 상태가 특히 심각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35~36세 여성의 경우 아예 신청 단계에서 거절당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허용된 시한인 37세 생일이 되기 전에 시술받기 위해 해외로 향하는 여성도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권리를 약속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의료 시스템은 충분하지 않은 셈이다. 프랑스 여성들이 스페인이나 벨기에, 영국, 경우에 따라 미국의 사립 병원을 찾는 것도 이런 간극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가 목적지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난자 냉동만을 위해서라면 프랑스에서 시술받는 편이 비용 부담도 적고 보장 범위도 넓다. 그럼에도 미국을 택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프랑스에서 엄격하게 금지된 대리모 제도를 이용할 수 있고, 난자 기증자를 개인의 조건에 맞춰 선택할 수 있으며, 오래 대기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린베르그 교수는 이를 단순하게 요약한다. “미국에는 돈을 지불하면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는 이어 “미국의 병원은 40세 여성의 난자로 아이를 가질 확률이 10%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술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결국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거죠”라고 지적한다. 흥미롭게도 이동은 반대 방향으로도 일어난다. 미국 여성들은 난자 냉동을 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찾는다. 미국에서 한 차례 시술에 1만~1만5,000달러가 드는 데 비해 유럽에서는 평균적으로 약 40% 저렴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과 나이에 초점을 맞춘 이 논쟁에서 자주 빠지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남성의 생식능력이다. 그린베르그 교수는 “불임 사례의 절반은 남성과 관련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나이가 들수록 정자의 질도 떨어집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점점 분명해진 사실이죠. 그런데도 충분히 공론화되지 않고,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유엔인구기금 역시 ‘2025년 출산율의 진정한 위기’ 보고서에서 같은 문제를 짚는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 역시 출산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기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출산은 결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돌리는 순간 문제의 절반뿐 아니라 해결의 실마리마저 놓치게 된다. 개인별 가임력 정보를 제공하는 ‘레나 케어(Lena Care)’ 앱은 청소년기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성 중심으로 논의돼온 분야에서는 드물게 남성과 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모듈도 갖추고 있다. 불필요한 불안감을 키우기보다 일찍부터 자신의 생식 건강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린베르그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가임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순 없지만 가능한 한 일찍 좋은 습관을 들이면 그 영향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한다. 토스칸의 난자 9개는 지금도 액체질소 속에 유리화 동결된 채 보관되어 있다. 그녀는 언제 그것을 사용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결정을 내렸으며, 미래를 준비했다. 커리어와 관계, 아이를 가질 시기까지 많은 조건을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여성에게 가장 큰 사치는 어쩌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아니라 그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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